병원에서 대부분의 의사들이 가장 흔히 접하게 되는 환자들의 첫 마디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왔어요.”, “어제부터 심하게 감기가 걸려서…”, “며칠 전에 좀 무리를 했더니 감기 증세가 심해요.”, “동생이 감기가 걸렸는데 옮았나 봐요.”, 등의 감기와 관련된 신고들이다. 거기에 ‘열 감기’, ‘목 감기’, ‘코 감기’, ‘기침 감기’ 등 감기의 종류와 증상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감기라는 자가 진단에 “네, 감기약 지어 드릴께요.” 하고 의사가 웃으며 답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A형 간염이 의심됩니다.”, “말라리아 같은데… 확인해 봅시다.”, “혹시 외국에 다녀 오셨나요? 꼭 신종 인플루엔자 같네…” 등등 깜짝 놀랄 말을 환자에게 꺼내야 할 경우도 많다.
각종 전염병이 주위에서 흔히 발생하는 요즘, 스스로 진단하는 ‘감기’가 과연 ‘감기’가 맞는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전염병의 예를 통해 간략히 알아보고자 한다.
평소 건강하게 지내던 직장인 30대 A씨는 며칠 전부터 심하게 몸이 추운 느낌이 들었다가 열이 나는 일이 반복되어 감기약을 먹었으나 증상이 지속되어 방문하였다. 의사는 먼저 콧물, 기침, 가래가 있는지, 목이 칼칼하거나 침을 삼킬 때 아픈지를 물어보았다. A씨는 그런 증상은 전혀 없다고 하였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의사의 질문과 신체검사 결과 A씨는 최근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올라와 식사를 거의 못하고 있었고, 오른쪽 윗배를 누르거나 두드릴 때 통증이 있었다. 의사의 연이은 질문에 A씨는 같은 팀 직장 동료가 2주 전에 A형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다고 하였다. 이후 검사에서 A씨는 급성 A형 간염으로 진단을 받았다. 감기는 각종 호흡기 바이러스가 상부 호흡기(코와 목을 말한다)에 침입하여 일으키는 급성 질환으로 상부 호흡기 증상(갑작스런 콧물, 코 막힘, 기침, 가래, 침을 삼킬 때 목이 아픔 등)과 전신 증상(몸이 춥고 한기가 드는 오한, 발열, 전신이 쑤시고 아픈 근육통 등)을 일으킨다. 호흡기 증상이 전혀 없었음에도 A씨는 오한과 발열 만으로 감기로 오인한 것이다.
A형 간염은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올라오며 간 부위의 통증 등 소화기 증상과 소변이 짙어지고 피부색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 환자와의 접촉력 등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
야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40대 남자 B씨는 일주일 간의 심한 오한과 발열이 있어 감기로 약을 사 먹던 중 건설 현장에서 탈진하여 병원을 방문하였다. B씨는 호흡기 증상은 전혀 없었고, 심한 오한과 발열이 하루 걸러 하루 꼴로 발생했다고 하였다. 의사는 B씨의 거주지와 건설 현장의 위치를 물어보았고, 집은 서울이었으나, 건설 현장은 파주에 있어 말라리아 유행지역이었다. B씨의 혈액 속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이 확인되었다. B씨의 경우도 호흡기 증상이 전혀 없었음에도 감기로 오인된 경우였다. 말라리아는 인천, 경기도 북부, 강원도 북부에서 모기에 자주 물렸는지, 하루 걸러 하루 열이 나는지 등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
40대 가정 주부 C씨는 어제부터 심한 오한과 발열, 기침, 콧물이 있어 병원을 방문하였다. 의사의 질문에 외국에 다녀온 일이 없다고 하였으나, C씨는 곧 중학생인 아들이 10일 전에 외국에 갔다 온 뒤로 열 감기를 앓았고, 동생인 초등학생도 열 감기가 있다고 하였다. 이후 검사에서 C씨와 그의 초등학생 아들은 신종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것으로 진단되었다. 호흡기 증상만 보고서는 심한 감기로 생각할 수 있는 경우였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경우 증상은 감기와 유사하나 오한과 발열, 전신 근육통이 심하고, 외국 여행이나 의심되는 환자와의 접촉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흔히 발생하고 있는 급성 A형 간염, 말라리아, 신종 인플루엔자의 실제 예를 들어 보았는데, 모두 감기로 착각하기 쉬우나, 콧물, 기침, 가래, 목 아픔 등의 흔한 감기 증상이 있는지, 오한과 발열이 매우 심하거나 다른 장기의 증상은 없는지, 주변에 전염병 환자가 있는지, 전염병 위험 지역을 방문했는지 등의 간단한 사실로도 진단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심한 증상이 있는 경우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겠으나, 단순히 감기라는 자가 진단 하에 적절한 진단과 치료의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부디 간단한 몇 가지 사실을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 감기? 이럴 땐 감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1) 콧물, 기침, 가래, 인후통(침을 삼킬 때 목의 통증) 등 호흡기 증상이 전혀 없어요.
2) 오한과 발열, 근육통이 너무 심해요.
3) 누런 가래와 기침이 너무 심해요.
4) 구토, 설사, 복통, 피부 발진, 빈뇨(소변을 자주 본다), 배뇨통(소변 볼 때 통증이 있다) 등의 증상이 심해요.
5)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체중이 감소했어요.
6) 최근에 외국 여행을 다녀 왔어요.
7) 말라리아 유행지역에 있었어요 (인천, 경기도/강원도 북부, 최근 해당 지역 군대 근무).
8) 가족, 친구 혹은 직장 동료가 최근에 전염병(A형 간염, 신종 인플루엔자 등)을 앓았어요.
9) 전부터 만성 질환 (호흡기, 심장, 신장, 신경계 질환 등)을 앓고 있었어요.
중앙대학교병원 감염내과 <최성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