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마주했다. 며칠 만인가... 다시는 마주할 수 없을 거 같았던 거울... 아니 나... 일반 병실에 오기만 하면 바로 뺄 줄 알았던 콧줄... 이제나~ 저네나~ 콧줄을 한 채로 또 며칠을 지냈다. 간호사 선생님이 갑자기 오더니 콧줄을 빼주겠다 해서 사느라 바빠서 잊고 있었던 첫사랑을 만난 듯 얼굴을 들이 밀었다. 그동안 콧줄을 한 다른 환자들을 볼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아 심난했다. 이제야 사람 꼴을 한거 같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생각할수록 고맙다. 몇 해 전 명의를 소개한 책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아파본 적이 있는 분들은 모두 공감하리라... 병이 낫기만 한다면 못할 게 없을 것 같은 심정... 어느 의사한테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왜 나한테는 그런 분이 없을까? 답답한 마음에 책을 사서 가까운 곳부터 순서대로 가봤지만 실망뿐이었다. '저들의 명의가 나의 명의는 아닌가 보다'싶었다. 그래도 완전한 포기는 안됐다. 아프니까... 하다 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찰나의 순간 죽는 것보다 장애인이 되는 게 더 두려웠다.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하루가 지났고 중환자실이란다. 적지 않은 줄들이 나를 메어놓고 있었다. 중환자실을 경험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 된 내가, 그렇게 된 나를 치료해 준 의사 선생님을 그런 곳에서 마주했다. 본인 손을 내밀며 힘껏 쥐어 보란다. '아~ 왼쪽이 마비였지' 뒤늦게 생각났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된 모양이었다. 쓰러질 당시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끝내 움직일 수 없었던 왼쪽이 움직여졌다. 누가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했다던가? 내가 딱! 그랬다. 이제 일반 병실로 옮겨 달라 했다. 일방 병실에 자리가 없어서 중환자실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기막혔다. 빽도 없고, 돈도 없고, 뭐가 없는 게 많은 내가 매달릴 데는 담당 교수님밖에 없었다. 난 과정은 모르겠다. 궁금하지도 않다. 그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만 기억난다. 〃우리도 중환자실에 오면 보기가 힘든데 멀쩡한 정신으로 얼마나 힘들겠냐〃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에서 아군을 만났다 해도 이렇게까지 고마울 수는 없을 거 같다. 새삼 이런 의사 선생님을 배출해낸 중앙대병원에도 고맙다. 나의 명의 박찬영 교수님!!! 세상에나 내가 그렇게 애타게 찾을 때는 없더니 결정적일 때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려고 하셨나 보다. 길게 아파본 분들은 알리라.. 병은 누가 도와줄 수도 없고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가족도 알 수 없는, 결국 나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이렇게 된 나에게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환자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얼마나 눈물 나게 고마운지 은인이 따로 없다. 명의가 별건가 환자 마음을 헤아려주고, 병 고쳐주고, 재발하지 않도록 사후관리까지 최선을 다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있다면 그분이 명의가 아닌가 싶다. 어느새 봄이 됐다. 나는 이 볕 아래서 바람을 느끼며 뇌경색 이전의 일상을 계획하고 있다. 나 하나 사람으로 살게 하려고 정말 여러분이 애쓰신 걸 안다. 신경과 박찬영 교수님, 강동욱 선생님, 재활의학과 신현이 교수님, 정민재 선생님, 정준영 선생님, 최재희 선생님, 11병동 간호사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이분들로 인해 중앙대병원의 호감도가 한껏 상승했습니다. 편찮으신 모든 분들이 중앙에서 양질의 치료를 받고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중앙대병원에서 치료받았던 모든 날들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