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로 가기 본문으로 가기 하단으로 가기

병원뉴스

다음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두바퀴로 달리는 신조선통신사 행사에 다녀와서…
2015-11-27 조회수 : 5,754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두바퀴로 달리는 신조선통신사 행사에 다녀와서…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서경묵 교수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여 외교부와 조선일보가 주최한 두바퀴로 가는 신조선통신사 행사에 짧지 않은 23일간을 팀닥터로 같이 했습니다.
 
떠나기 하루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번 행사는 단순히 자전거 타는 행사가 아니다… 현재 어려운 한,일 관계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민간인들의 교류에 여러분들이 참여 하는 것이다… 양국의 문화교류의 선두주자가 되어야한다… 11월 2일 도쿄에 도착할 때까지의 두 바퀴는 한국과 일본을 의미한다… 이 두 바퀴가 합심하여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이번 행사에는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가면서  우리 선조들의 많은 유적과 유물을 만날 것이다… 또한  한,중,일  정상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는 기간 우리는 도쿄에 들어가게 된다… 자부심을 갖고 모든 행동에 조심하고 집행부의 지휘에 잘 따라 달라…’는 당부를 들으며 모두들 숙연해 졌습니다.
 
10월 11일 일요일 경복궁에서 출정식을 하고 약 50 명의 한, 일 라이더들과 지원팀들이 경복궁을 떠나 6일 동안 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 국내를 달렸습니다.
 
19세에서 79세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한,일 라이더 들은 가파른 언덕길에서는 젊은 대원들이 나이든 대원을 뒤에서 밀어 주며 서로를 격려 하며 약 500여 Km를 달렸습니다.
 
국내 라이딩 도중에 평크가 나며 낙차를 하여 부상한 한, 일 대원들이 3명 발생 하였으나 응급처치를 해주었고 다행히 골절은 입지 않아 매일 소독을 하며 붕대를 감고 테이핑을 해가며 모두 부산까지 완주를 하였습니다.
 
제 자신도 주말에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산악자전거를 탈 정도가 되어 힘들었지만 그들과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라이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령 문경새재를 넘을 땐 호흡이 턱끝까지 차올라 헉헉 소리를 내며 맨 마지막으로 정상에 올랐지만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산에 도착하여 일요일 하루 자전거 정비와 휴식을 취하고 월요일 아침 대마도로 배를 타고 들어가 일본 행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다음날 후쿠오카를 거쳐 시모노세키로 들어가서는 배를 타고 일본 내해를 밤새 타고 올라가 새벽에 오사카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일본자전거 여정이 시작 되었습니다.
 
일본은 아시다시피 자동차 통행이 우리와 반대여서 익숙치 않은 우리팀에게는 자칫 대형사고의 위험이 상존했고 자전거 길도 전용도로가 아니어서 위험한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 할 수도 있었습니다.
 
안전사고 예방이 제일 우선이기에 집행부와 매일 상의 하며 이구간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라이딩을 중단하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오사카에서 교토, 나고야, 시즈오카, 하코네, 요코하마를 거쳐 동경을 향해 은륜을 밟았습니다. 이동하면서 조선통신사의 유적지를 방문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그때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도쿄에 입성하기 이틀전 일본 라이딩의 하이라이트는 이화령 고개보다 보다 2배 어렵다는 하코네 언덕을 넘어야 요코하마를 거쳐 도쿄로 들어 갈수 있었습니다.
 
일본측 지휘부에서는 ‘50여명이 다 넘기는 무리이고 차들이 많아 너무 위험하다’, ‘선수급 젊은이들을 위주로 10 여명씩 선발하여 5명씩 팀을 이루어 일렬로 넘는다’라는 지침을 정해 대원들 모두가 넘고 싶어 했지만 모두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나이로 보나, 자전거 라이딩 실력으로 보나 제외 되어야 하나 팀 닥터는 반드시 쫒아 다녀야 한다고 건의하여 단장이 ‘괜찮으시겠냐’ 걱정 속에 라이더에 끼게 되었지요.
 
선두로 출발했으나 5분도 안되어 숨은 차오르고 진행속도는 늦어지니 젊은 라이더를 앞으로 보내고 내 페이스에 맞게 하코네 언덕을 올랐습니다. 저 때문에 30분정도 지연이 되었고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 했지만 마지막 까지 힘을 다해 정상에 가까워지니 먼저 도착한 대원들과 지휘부에서 박수로 저를 맞아 줄때는 아직 나의 엔진에 문제는 없구나를 느끼면 다시 한 번 감격을 했지요.
 
아쉬운 점은 일본 라이딩 중에도 조그마한 사고는 있었지만 잘 진행되던 중에 마지막 며칠을 남기고는 국내 젊은 라이더 한명이 회전구간에서 펑크가 나며 낙차가 되어 대형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자전거는 반파가 되고 응급처치를 하고 다음날 병원에서 하지골절이 확인되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동경에 11월 1일 일요일 한일정상 회담 날에 모두들 무사히 입성하여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벌였고. 다음날 마지막 행사인 후쿠시마 위로방문을 하였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발생하여 원전사고 난  후쿠시마원전  40km 지점인 미야기현의 가장 큰 피해를 본 마을을 방문하였지요. 그곳 상주인구의 30%정도인 115명의 사망자를 낸  가장 큰 피해지역중 한곳인데 살아남은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길 원하지 않고 정부는 이주민들이 다시 살아 갈수 있도록 10m 의 쓰나미에도 견딜 수 있는 제방을 다시 쌓고 파괴된 주택은 좀 더 고지대로 새로 만들면서 아직까지 재건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재연한  전시관을 들러 본 느낌은 당시에도 그랬고 또한 4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동요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고, 전국적인 모금과 복구에 힘쓰며 재난을 극복하려는 단결된 힘이 일본의 힘이 아닌가 하는 것을 느꼈지요.
 
또한 이러한 재난이 일어났을 때 반드시 feed back을 통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최소의 피해가 일어 날수 있도록 대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훈련을 반복하는 모습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우리도  결코 지진이나 대형원전의 사고 안전지대는 아니니 일본의 참상을 반면교사 삼아 정부는 점검 또 점검하고 훈련을 통해 만에 하나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행사를 통하여 그 당시 성신교린(誠信交隣))의 기치아래 조선과 일본 막부시대의 한일 교류가 200여년 동안 12회에 걸쳐 조선통신사가 왔었다는 기록을 사료를 통해 확인하면서 들으며 일본대원들은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하면서 신기한 듯 열심히 듣고 당시 일본 역사의 뿌리가 우리나라에서 들어온 것에 대해 놀라움 금치 못했고 유적지에 남아있는 유물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의 사절단이 들어와 짧게는 8개월에서 1년 사이 여정에 당시 일본1년 예산의 30%란 엄청난 돈이 들었고 정권이 바뀌면서 양국의 경제사정으로 중단 후 정부차원의 교류가 끊겼다고 합니다.
 
200년 동안 이 시기는 양국이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하면서 당시도 지금도 소통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재 한일 민간단체에서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하려 노력중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시대 걸출한 일본의 3명 쇼군(장군)의 성격을 비교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일본 전국통일을 눈앞에 두고 부하의 배반에 죽은 쇼군 오다 노부나가
   '두견새여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여 울지 않으면 무슨 방법을 쓰든지 울게 해 보이겠다'
 
세끼가라 싸움에서  첩자를 이용하여 싸움에 쉽게 이기며 애도막부의  전국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두견새여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우리 중앙 가족들은 조직에서 또한 가정에서 어떤 타입이십니까?
 
2주 넘게 일본의 조선통신사의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우리선조들의 서, 화, 예 의 놀라운 실력을 당시에 일본에 전해 주었고 그들은 그것을 배우고, 익히고 발전시킨 역사적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한번 한,일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서로 용서하고 반성하고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멋진  미래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를 팀 닥터로 파견을 허락해 주신 의료원, 대학에 감사드리며 글을 맺습니다.
 
첨부파일